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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자연

튀니지 최고(最高)의 산 솀비

by monsieur 2010. 12. 13.

 

하라와 지중해의 나라 튀니지에는 높은 산이 없다. 솀비(Chambi, 1544m)는 그런 튀니지의 최고봉이다. 하지만 솀비가 있는 캐세린의 평균고도는 700미터정도되고 산의 서쪽 알제리쪽은 1100미터의 평원이다. 산의 동쪽인 캐세린에서 평평한 땅이 조금씩 높아지다가 약간 높이 솟아 오른 산맥이어서 실제규모는 500~600미터의 산보다 더 작다.
그러나 한 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위치는 솀비를 남다른 산으로 만들었다.


산을 좋아한다고 말을 하자 튀니지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바로 솀비다. 마치 알라를 말할때처럼 눈꺼풀을 반쯤 닫고 입을 조금 벌리고 턱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솀비를 외치는 튀니지의 대학교수를 봤을때 그가 높다는 생각으로 하늘을 본것인지 신성한 산이기 때문이었는지를 차마 물어보진 않았지만 솀비라는 산을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튀니지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자부심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산에 가보기로 마음먹었지만 정보가 없다. 구글어스로 찾아본 솀비에는 정상에서 찍은 사진 두 장과 솀비로 올라가는 길에서 찍은 사진 한장밖에 없었지만 캐세린에서 입구까지 거리가 25킬로정도 되고 정상에 군부대가 있어서 도로가 정상까지 나 있는것으로 보였고 산 입구에도 문이 있는것 같았다. 입구에서 막으면 산의 남쪽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서남쪽계곡으로 올라가면 될 것 같아 보였다.
튀니지에서 가장 높은 산을 못올라가게 한다는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도전해 보기로 했다.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캐세린으로 가야 한다. 튀니스에서 출발한다면 캐세린으로 가는 버스가 있으니 쉽게 갈 수 있었겠지만 가베스에서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새벽같이 갑사로 가서 캐세린으로 루아지를 갈아타고 가야 했다. 다행이 많이 기다리진 않았지만 비가와서 온통 도로가 엉망이된 길을 250키로나 가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도로 곳곳이 폭우에 포장이 씻겨 나가서 비포장이고 공사도 많이 해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튀니지에서 봄이면 이렇게 포장을 하고 보수를 하는 곳이 많다. 여름 최소 6개월간은 비가 거의 안오기 때문에 편리한점도 있는것 같다.

 

 

세린 근처에 오자 도로 왼편으로 솀비가 보인다. 그런데 산에 가까와지자 구름이 몰려오고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솀비 윗부분은 보이지 않지만 거의 정상까지 보였는데 산에 구름이 잔뜩껴서 비가 많이 내리는것으로 보였다. 낮다고는 해도 역시 1500미터가 넘는 산이어서 구름이 만들어지고 비를 내리나보다.
캐세린의 루아지 터미널은 튀니스방향인 도시의 북동쪽 끝에 있기 때문에 솀비에서 가까운 실리움 유적지앞에 내렸다. 이곳에서 솀비까지는 가까우니 버스나 택시등을 탈 수 있을 것 같아서 내리긴 했지만 주변엔 흔한 따박(담배라는 뜻인데 구멍가게를 지칭한다.)도 안보였다.
실리움 유적지 앞 로터리에 서있는 택시를 무작정 타고 솀비로 가려고 한다고 물었더니 솀비로 갈 수 있다고 한다. 먹을것을 전혀 준비안했기 때문에 솀비로 가던 차를 돌려서 시가지로 가자고 했다. 친절한 기사가 가까운 시가지의 유명한 빵집을 안내해줘서 북적대는 사람들 틈에서 빵과 음료수등을 사고 다시 솀비로 향했다.

비가와서 걱정했지만 다행이 비는 그쳤고 은근하게 올라가는 도로가 아주 멀게 느껴졌다. 10디나르(1만원)로 요금을 정해서 갔지만 왕복 40km가 넘는 거리라서 많이 싸다고 생각된다.

 

 

을이라곤 없고 외딴집이 한 두채 있는 먼길을 올라가서 입구에 도착하니 운영되지 않는다는 호텔건물이 하나 있고 커다란 문이 설치된 정문이 보인다. 구름이 걷힌 솀비의 정상엔 군부대의 통신탑이 잘 보였고 야트막한 산으로 보인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정문을 지키는 군인에게 관광온 사람이라고 설명을 해주고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떠났다. 정문을 지키는 군인은 낡은 군복은 입고 있지만 너무 나이가 많아보인다. 튀니지 사람들이 나이에 비해 더 들어보이는건 사실이지만 최소 50세는 넘은 군인이 허름한 군복을 입고 정문을 지키는것은 좀 의외다. 깐깐한 물음으로 복사본여권도 안된다고 하고 정상의 군부대로 전화를 해서 꼬리아 제노비아(남한, 꼬리아 샤마리아는 북한)임을 재차 물어본 후 입장을 허가해 준다. 북한의 경우 외교관계가 단절되어서 허가가 안된다고 한다.

 

정문옆의 쪽문으로 들어가니 안쪽으로도 길이 직선으로 길게 뚫렸다. 12시에 출발했기 때문에 조금 서둘러야 될 것 같다.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걷는데 왼편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놀러왔다. 시끌벅적하고 버스까지 있는게 단체로 수학여행을 온 것 같다. 그런데 그때 천둥이 치고 비가 한 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길 한 쪽에 세워둔 버스로 아이들이 뛰어오고 나도 우산을 펴고 계속 올라갔다. 조금 더 올라가자 길 오른편에 생태박물관이 있었는데 억수같이 내리는 비에 아이들이 가득탄 버스가 그쪽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산에 올라갔다 내려올때 봐야할 것 같다.

 

 

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이지만 색다르고 경치도 좋다. 그러나 이제는 천둥과 번개가 점점 심해져서 바로 옆에 번개가 치는것 같다. 사방이 훤한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가는 번개에 맞을것 같았다. 길옆의 소나무 숲아래로 내려가서 잠시 비가그치길 기다리는것이 나을 것 같아서 내려가서 몸을 낮췄다. 조금더 아래의 개천에서는 억수같은 물이 내려가고 하늘에서는 콩알만한 우박이 내리기 시작한다. 겨울에 눈도 내린다더니 5월 1일에 우박이 내리는걸 보니 사실인가보다.


하얗게 쌓이던 우박도 멈추고 주변에 치던 번개가 조금 멀어지는 것 같아서 다시 길을 나섰다. 30분이나 지체했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길 중간에 깔끔하게 칠한 벤치도 있고 등산학교란 표지판도 보이는 걸로 봐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곳인것 같다. 길이 점점 좁고 가팔라지자 구름도 걷히고 정상부에 다 온것 같다. 정상바로 아래는 캐세린쪽으로 전망좋은 곳에 벤치도 놓여있고 구름이 산을 넘어가는 풍경이 멋지다.
항상 바람이 많이 부는 곳답게 작은 키의 식물들이 바위지대 사이로 나있고 아래로는 구름이 넘어가는 풍경이 마치 설악산이나 지리산의 정상에 온듯 고산의 경치를 보여준다.

 

 

상부는 세개의 봉우리로 되어있다. 남쪽에서 올라간 길의 정면에 북쪽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고  가운데의 봉우리에는 정상표지대신 튀니지의 붉은 초승달이 있다. 남쪽으로도 길이 나있고 사람들이 올라간 흔적도 있다. 새개의 봉우리지만 정상부가 길쭉한 평면처럼 넓고 부드럽다. 구름위에 있어서 캐세린시가지는 볼 수 없었지만 맑은 날이면 뚜렸하게 잘 보일것이다. 산 서쪽은 거의 절벽으로 경사가 급하고 동남쪽은 경사가 급하긴 하지만 서쪽에 비하면 완만한 편이다.

솀비도 알제리 국경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서쪽평원에 중간부분은 알제리땅 일것이다. 구름이 땅에 붙어 흘러가는 모습이 신비함을 더해준다.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튀니지에는 강이라고 할 수 있는곳이 튀니지의 북쪽을 가로질러 흐르는 메제르다강(Oued Mejerda) 밖에 없는데 지류도 알제리에서 시작된다. 알제리의 산악지대는 더 높고 깊어서 2000미터가 넘는 곳도 많다. 하지만 솀비를 비롯해서 사하라사막에 접해있는 산에서 흐르는 물은 강으로 발전해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여름이면 마르는 호수로 흘러든다. 와디라고하면 사막에서 일시적으로 흐르는 강과 계곡을 뜻하는줄 알았지만 이곳에서는 우웨드(Oued)라고 강과 별도로 구분하지 않는다.

솀비에서 발원한 물은 여름에는 마르지만 캐세린지역에 젖줄이 되어 고대유적지인 실리움을 탄생시켰고 이 물은 시디부지드 너머까지 흐르는데 시디부지드의 북서쪽 산속에 있는 튀니지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가 된다. 이 호수의 물은 까이로완과 수스로 흘러가서 많은 인구가 밀집한 사헬지역의 젖줄이 되는것이다. 발원지가 솀비만은 아니지만 가장 높은 산에서 발원한 물이 북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신성한 고도(古都)인 까이로완의 식수가 된다고 생각하니 신비롭다. 대기근을 겪었던 사헬지대에 오아시스가 솀비라는 생각은 심한 비약일까?

 

려가는 길은 서둘러야 한다. 12시 조금 넘어 시작한 산행이 번개때문에 늦어져서 벌써 3시 20분이나 됐다. 빨리 내려가야 5시 전에 정문에 도착할 수 있을것 같다. 정문에서 군인이 5시 전에 내려와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조금 빠듯할것 같았는데 서두르지 않으면 늦겠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에 외국인 부부가 차를 끌고 올라왔기 때문에 얻어타고 내려갈까 고민도 했지만 기왕 올라온것 비때문에 경치를 잘 못봤기 때문에 중간에 뛰더라도 걸어서 내려가기로 마음먹는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올라오는 중간에 보았던 비포장 길이 보였다. 확실하진 않지만 분명한 지름길이다. 시간도 줄일겸 푹푹빠지는 길을 조금 걸어서 내려가다보니 왼편 계곡에서 '푸다닥' 하는 큰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산양들이 내앞에 나타났다가 오른편 산으로 튀어 올라간다. 중간에 조금 작은 녀석도 있었지만 제일 마지막에 조금 떨어져서 올라간 숫양의 근육에 기가 확 질렸다. 뿔의 크기도 엄청크고 굵기도 굵은데다가 가파른 산을 뛰어 올라가는 뒷다리의 근육이 선명해서 부딛혀오면 피할 수도 없이 낭패를 당할것 같았다. 길에서 잠깐 나와 대치하던 숫양은 다른 양들이 산으로 줄지어 올라간 조금 후에 당당하게 방향을 바꿔 산으로 올라가더니 다시 한 번 산위에서 나를 한참 처다보고 사라진다. 사진을 몇 장 찍었지만 카메라의 탓에 선명하진 못하다. 사진을 찍을때 까지 몇 초간 가만히 있다가 사라지는 숫양은 계곡의 물을 마시러 내려왔다가 북서쪽으로 가파른 곳에 둥지로 돌아가는 길에 나를 만났던것이다. 내가 그 길목에 있었더라면 어찌되었을지 생각만해도 찌릿하다.
양들의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 빠른 걸음으로 푹푹빠지는 길을 내려가서 도로를 따라 정문에 도착했다.

하산시간은 4시 40분으로 1시간 20분이 걸렸다.

 

 

정문앞에서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전화를 하고 정문을 나섰지만 택시는 4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거리가 멀기때문에 이해를 해야하는 부분이다. 조금더 먼저 전화를 했어야 하는데 시간에 쫒겨 생각을 미처 못했다. 맑아진 솀비의 사진을 다시 한 번 찍으려고 조금 내려왔더니 운영을 하지 않는다는 호텔에 청년들이 있다.  만약 운영을 한다면 이곳에서 하루 묵는것도 괜찬겠다고 생각해서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호텔이 아니고 일종의 연수원 같은 곳으로 학생들은 농구부라고 한다. 안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지 아주 시끄럽다.


아주 멀리에서 택시가 오는것이 보인다. 늦은 시간이어서 실리움은 문을 닫았고 지나가면서 사진한장만 찍었다. 솀비를 배경으로 황량한 길가에 한쪽이 깨진 개선문이 멋있었는데 지금처럼 비가 오면 진창에 엉망일것이다. 시간이 남는다고 해도 구경할 마음이 안날것 같다.
택시기사에게 번개와 소나기로 고생했다고 하자 봄에는 거의 매일 오후에 뇌우가 쏟아진다고 한다. 캐세린의 호텔을 물었더니 적당한 곳이 있다고 한다. 호텔은 밖에서는 간판도 없는 가정집같이 보였지만 안에는 정원도 있고 흔치않게 TV와 욕조까지 있는 저렴하고 괜찬은 곳이었다.

 

 헤이드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