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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자연

튀니지의 자존심 주그르타 테이블

by monsieur 2010. 12. 12.

주그르타 테이블(Table de Jugurtha)은 튀니지의 자존심이다.
이스라엘의 마사다와 같이 평평한 산에서 로마인에 저항했던 유그르타의 전설이 살아있는 곳 주그르타 테이블을 찾아간다.

 

유그르타의 이야기는 로마시대에 쓴 유그르타전쟁이란 책이 있을 정도로 자세히 알려진 로마사의 한부분이다.

로마의 카르타고 전쟁에 한 몫을 했던 누미디아는 지금의 튀니지 서부와 알제리의 산악지역에 있던 왕조로 기병으로 유명했다.
카르타고와 로마의 운명이 걸린 대회전인 자마전투는 누미디아출신 풍운아 마시니사의 기병대의 혁혁한 전공으로 로마의 승리가 되고 로마는 마시니사에게 누미디아의 통치를 맏긴다. 마시니사의 아들 미킵사가 왕이 되고 미킵사는 두 아들과 양자인 유그르타 셋이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통치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유그르타는 나머지 형제를 죽이고 이복형제의 편에 섰던 로마인까지 살육한다. 이에 로마는 유그르타를 정벌하러 나서고 유그르타는 강력한 로마병사들을 괴롭히며 수년간 저항했지만 협력국인 마우레타니아의 배신 때문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유그르타의 전쟁을 쓴 로마인이야 형제를 죽인 흉폭하고 간악한 인물로 유그르타를 그리고 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지략과 용기를 가지고 로마인들을 괴롭히다가 적의 간계에 죽음을 맞이한 영웅이다.

 

튀니지의 최초의 기념은화에는 10가지의 유명한 인물등을 넣었는데 한니발, 아우구스투스,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마시니사와 유그르타가 포함된다. 나머지 다섯가지는 엘젬, 스베이틀라유적, 페니키아 전함, 넵튠, 비너스 그리고 공통면은 부르기바 초대대통령이다.

 

 

 

험난한 지형을 이용해서 2년간이나 로마와 대적했다는 유그르타의 전설이 전설이 아님을 주그르타 테이블을 가보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주그르타 테이블은 튀니지의 서쪽 끝 알제리 국경마을인 칼랏드 시난에 있다.
바로 가는 버스는 오후에 두 대 밖에 없어서 알아보니 가장 가까운 도시인 떼제로윈으로 가야 한다. 떼제로윈은 케프에서 멀지 않다. 아침 일곱시에 튀니스의 밥사둔 터미널에서 케프를 거쳐 떼제로윈, 텔라로 가는 버스를 탓다. 자동 발권기가 고장나서 삼십분을 늦게 출발한 버스는 두가 아래 테보숙을 지나 케프 터미널에서 10분 이상 정차 후에 출발했다. 주변에 점점 멋진 산들이 나오고 경치가 좋아지자 몇 남지 않은 사람도 다 내리고 이제 버스에는 나와 기사뿐이다. 주그르타 테이블에 간다는 말을 들은 버스기사는 떼제로윈의 루아지 정류장에 나를 내려주고 혼자서 텔라로 떠나버렸다.

 


제로윈의 루아지 정류장에서도 제일 아래쪽 한적한곳에 서있는 낡은 루아지안에는 운전기사를 포함해서 모두가 불어를 하지 못했지만 젊은이나 아주머니들도 모두 선한 웃음띤 인상이어서 걱정이 없다. 루아지의 앞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출발하자 마자 멀리있는 주그르타 테이블이 보이기 시작한다. 기이한 모양으로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산의 가장 높은곳은 1271m에 달한다. 가까이 다가가서 이제 왼편으로 보일때쯤엔 높다기 보다는 누가깎아 놓은듯 판판한 조각같다. 남쪽인 헤이드라에서 볼때는 멀리서라도 하늘을 찌를듯 높아서 장엄해 보였는데 이곳은 지역이 조금 더 높은 곳이어서 의외로 야트막하게 여겨진다. 맑아서 가까이 보이는것도 원인같다.

 

 

루아지 기사는 칼랏드 시난의 터미널로 가지 않고 가르드 네셔널에게 나를 내려주고 떠난다. 알제리 국경이 10킬로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곳이니까 신고를 해야 하나보다. 작은 사무실에 들어가니 흰머리와 수염이 점잔은 가르드 네셔널이 나를 맞아준다.

주그르타 테이블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느껴질 만큼 점잔코 느긋하게 간단한 확인을 한후 전화를 해서 차를 부른다. 어디서 온 사람인지 낡은 차를 몰고온 사람은 주그르타 테이블위로 올라가는 루아지가 정차된 곳까지 나를 데려다 준다. 내가 요금을 지불한다고 하자 가르드 네셔널이 시킨거라서 돈은 안받는다고 한다. 역시 국경지대의 절대권력이다.

 

 

경사가 심한 길을 올라선 루아지가 힘들어할 때쯤 사위가 확트이면서 주그르타 테이블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루아지 기사는 사진을 찍으라고 일부러 멈춰주겠다고 하고 난 창밖으로 사진을 한장 찍고 올라가자고 했다. 바로 산밑이고 거리가 가까운것 같은데 빤히 보이는 산밑까지 상당한 거리를 가야 한다. 사람들이 아인시난이라는 곳에 다 내리고 난 다시 조금더 올라가서 외딴집이 있는 곳까지 왔다. 루아지 기사는 전화번호를 적어주면서 산에서 내려오면 전화를 달라고 한다. 내려가는 차편만이 문제가 아니라 갈때도 가르드 네셔널에게 가서 신고를 해야 한단다.

 

  

루아지 기사가 알려준대로 얕은 담사이로 올라가니 사륜구동차는 갈 수 있는 길이 나오고 길을 가로질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2킬로 이상 올라가야 된다고 하니 조금 서둘러야 겠다.
조금 올라가니 양을 치는 아이가 앉아있다. 마트마타에서 강아지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터라 주변을 보니 강아지는 없다. 대신 아이가 다가와서 연필이나 뭐든지 달란다. 마침 기록중인 볼펜이 있어서 주었다. 또 조금 올라가니 길위 바위에서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이 가이드라고 하면서 따라오란다. 이곳은 신고를 해야 하는 국경지역이니 관광객에게는 가이드가 감시도 해야할 것 같다.

물과 음식이 든 비닐가방을 둘러맨 아저씨를 따라 가니 이제는 산의 가파른 절벽 바로 옆이다. 정상에서 아래쪽까지 갈라진 바위의 높이가 100미터는 되어보인다. 엄청난 돌덩이를 클라이밍하는 사람들이 보면 참 좋아할 것 같다.

 


길이 가팔라지고 점점 높아지자 테이블의 동쪽이 보이기 시작한다. 북쪽과 서쪽 남쪽은 모두 절벽인데 동쪽으로해서 올라가는 입구쪽은 의외로 테이블위쪽과 고도차가 적다.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동쪽의 높은 경사로를 올라가니 넓고 평평한 지대가 나온다. 그 한쪽에는 주거터가 남아있다. 이곳이 원래 이런 모양으로 생겼는지 주그르타 테이블을 공략하려고 로마인들이 쌓아서 높여놓은 것인지는 몰라도 멀리선 하나만 우뚝해 보이던 테이블이 가까이서 보니 산등성이로 연결되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드디어 입구에 다가왔다. 반대쪽에서 차로 올라왔는지 비포장길에 선명한 바퀴자국이 테이블의 입구 계단밑까지 나있다. 아마 단체관광객이나 떼제로윈에 있다는 여행사를 통하면 사륜구동차로 이곳까지 올라올 것이다. 가이드는 2000년전에 입구가 만들어졌다는 간단한 설명만 해주고 잘 만들어진 계단을 올라간다.

상당히 높이 올라왔지만 계단의 경사는 별로 없어서 안정감이 있다. 계단 안에는 소나 말들이 지나간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있고 계단의 중간에는 초승달 문양이 남아있는 입구가 나온다. 로마인들이 이곳을 정비하기 전에는 더 좁고 힘들게 이곳을 올라갔을 것이고 방어는 더 쉬웠으리라.

 

 

이블 상단에 도착하니 사방이 막힘이 없이 확트인다. 완전히 평평한땅에 남쪽이 높은 사선형으로 생겼고 서쪽으로 갈수록 넓어진다. 계단 바로 앞에는 땅을 판 굴이 나오는데 안으로 들어가보니 상당히 넓고 돌로된 윗부분은 아주 얇아서 굴을 판게 아니라 얇은 돌을 얹어놓은것 같다. 입구는 하나지만 안에는 몇 개의 공간으로 되어있고 기둥도 있는데 2000년전에 이곳을 사람이 손으로 파서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겨울에 양들이 비를 피하고 머무는 곳이라고 한다.

굴을 나와서 조금 가면 기도소다. 기도소 안에 가이드 아저씨가 들어가서 물과 음식을 내려놓고 안에서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지금은 사람이 안에서 잠을 자는것처럼 보인다. 나에게도 생각이 있으면 오늘밤은 이곳에서 자라고 한다. 여름에는 굉장히 시원하고 특히 별이 멋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어디나 똑같은 것 같다. 이런 맑고 높은 곳에서 휘황한 별을 보면서 역사를 생각한다는 건 특별한 경험일것이다. 사막의 별보다 더 화려하고 멋진 별들의 쑈를 볼 수 있을 텐데.. 준비도 안됬고 오늘은 상현달이 밝은 날이니 안되겠다. 아저씨는 가끔 자고 가는 사람들이 있고 최근에는 남아공 사람둘이 자고 갔고 패러글라이딩도 한다고 다음에 꼭 오라고 한다.

 

 

 

테이블의 중앙부로 나오니 아까 계단에다 오물을 투하한 소들이 보인다. 그 주변에는 사각이 뚜렷한 물이 고인 수조가 몇 개 있다. 누미디아인들이 만든것으로 온통 돌덩어리로 된 바닥을 파서 빗물을 저장하는 용도로 쓴것이다. 물에는 녹조가 가득하지만 제법 깊어서 물이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지금도 양과 소에게 이 물을 먹이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양떼를 몰고 있는 사람들이 네 다섯 명 되는데 인사를 주고 받는다. 양들은 한가롭게 잠을 자고 있고 바깥쪽 양들은 주변을 경계한다. 양들은 개들이나 사람이 지키는줄 알았는데 처음보는 광경이다. 양치는 사람들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따라 나선다.

 


 

테이블의 가장자리로 가서 끝모르게 갈라진 바위사이를 구경하고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초록이 가득한 들판에 헤이드라 쪽으로 가는 차가 한 대 지나간다. 그냥 봐도 아찔한 높이인데 이런곳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한다면 최고의 코스가 될 것 같다.
테이블의 북서쪽 아래는 칼라드 시난이고 바로 아래 빨간 지붕의 집들은 아인시난이다. 아인은 물이 나오는 곳이란 아랍어로 산악지대에 지명으로 많다. 알제리 국경은 바로 앞의 조그만 산 너머 란다. 한때는 전기철조망으로 알제리에서 튀니지로 넘어오는 사람을 막기도 했다는데 눈으로는 국경이 어딘지 확실한 분간도 안된다. 말도 같고 종교, 인종도 같고 심지어 프랑스 식민지였다는 것까지 같은데 두 나라로 살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테이블의 윗부분에는 지금은 모스크만 남았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이 살고 학교까지 있었다고 한다. 모스크 주변에는 집터가 남아 있는데 가이드 아저씨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돌로 되어서 표토층이 아주 얕기 때문에 작물을 재배할 수 없고 빗물 말고는 산아래쪽에 아인시난에서 식수를 날라와야 했다. 대신 지금은 너른 목초지처럼 양과 소를 키우는데 사용하고 있다. 초봄과 늦가을에는 비가 많이 오는데 사방 아무것도 없는 산위에 번개도 많이 칠것 같다. 앞으로는 테이블 위로 양이나 소가 올라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대신 관광객들이 더 많이 그곳을 올라가볼것이다. 이곳 사람들도 언젠가는 마트마타처럼 어린애들까지 아무에게나 집을 구경시켜주겠다고 1디나를 달라고 할 것이란 생각이 들자 씁쓸해진다. 아직은 약간 어설픈투로 우회적으로 장황하게 돈을 요구하는 아저씨에게 5천원짜리 동전을 건네주고 올라가는 길에 만났던 양치기 소년에게는 볼펜 한자루를 더 주고 루아지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기사는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데 그동안 슬슬 걸어서 내려갈 생각이다. 산밑에는 흙이 무너져 내리고 있고 마을 청년들이 보수하고 있다. 조금걸어서 도착한 아인시난에는  물이 콸콸 나오고 있다. 엄청난 바윗덩이 아래에 있으니 많은 물이 나오는게 당연한 현상이지만 역시 물은 소중하다. 튀니지에서 생수를 사먹지 않고 물을 마셔본건 여기가 처음이다.

 


산 아래로 많이 내려갔을 때쯤 루아지가 올라온다. 올라가는 루아지를 타고 다시 한번 아인시난을 돌아 가르드 네셔널에게 간다.

한층 더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나를 맞이한 가르드 네셔널의 어린 아들이 와있다. 사무실안에는 마을사람이 와서 동네사람과 문제를 중재해 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권과 간단한 확인을 마친 나를 터미널까지 또 태워준다. 산위에서 본 칼랏드 시난은 초록이 가득한 들판 가운데 있어서 깨끗해 보였지만 튀니지의 여느 시골마을처럼 길에는 흙이 가득하고 짓다만 집들의 회색이 우중충해 보이는 가난한 도시였다.

 

 

니스로 돌아올때는 루아지를 이용했다. 역순으로 떼제로윈에와서 케프로 간 다음 케프에서 튀니스로 갈 예정이다. 아침일찍 출발해서 오후 1시가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케프에서 케프의 언덕 제일 높은곳에 있는 카스바를 보고 여유있게 가려고 한다. 그런데 떼제로윈에서 케프로 가는 루아지 안에서 한 사람이 건축도면을 보고있는 것을 유심히 봤다가 말을 섞에 되었다. 그 아저씨는 케프에서 건축사 사무소를 하는데 일하고 돌아가는 길이란다. 도면을 손으로 그려서 캐드는 쓰지 않냐고 하니 아직은 일반건축물에 캐드를 많이 쓰지는 않고 큰 건물에만 캐드를 사용한다고 한다. 케프에서는 손으로 다 해결이 된다며 케프에서는 상당히 큰 건축사라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식사를 하지 않았던 터라 물어보니 좋은 식당을 알려준다고 해서 따라갔다. 터미널에서 100미터도 안되는 거리를 택시를 타고 올라가서 호텔식당에 들렀다. 호텔식당이라고 해도 아주 작은 규모다. 아저씨는 조금 부담스런 가격의 요리를 사주고 자신은 식사를 했다며 맥주를 마신다. 그러고 보니 식당안에는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많고 다 아는 사람들이다. 병원장이나 컴퓨터기술자, 세무공무원, 케프대학 교수 게다가 케프주의 주지사까지 와있다.

주지사와 인사까지 시키더니 주지사가 나가자 본격적으로 술판이 벌어졌다. 조그만 병에 담긴 맥주를 식당의 바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마시더니 금방 취해서 다들 헤롱헤롱이다. 나이가 많은 병원장까지 나가자 이제 좀 젊은축의 사람들이 어디서 모이자고 한다. 시가를 조금 걸어서 길가 모퉁이에 까페에 들어갔더니 먼저 자리잡은 사람들이 에어컨이 작동이 안되서 술못마시겠다고 집으로 갔다. 나와 함께갔던 아저씨는 딱 한 잔만 더하자며 계속 따라오라고 한다. 케프에서는 사람들이 술을 많이마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케프니까.

 


언덕에 자리잡은 케프의 골목을 약간 올라가니 주택가의 가게로 보이는 곳에서 술을 팔고 있었고 사람들이 십수명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튀니지에서 호텔말고 술을 전문으로 파는 곳은 처음본다. 이슬람 법으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는걸로 아는데 여긴 아닌가보다. 튀니지에 유태인 주거지가 제르바 말고도 2곳 더 있다는데 튀니스와 여기 케프인가? 유태인들도 술을 잘 안마실텐데 잘 모르겠다. 어째든 의외의 풍경이다. 게다가 가게에서는 포도주를 나눠담아서 팔기도 하고 반병도 판다. 가게주인과 기념촬영까지 했는데 사진이 엉망이어서 안타깝다. 가게주변에서 사람들에게 안주거리를 파는 아이에게 용돈을 주고 나는 나와 버렸다. 아저씨는 혀가 완전히 꼬부라져서 말도 잘 안되면서 자꾸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한다. 오후 4시가 채 안됬는데 술취한 남편과 들어오는 외국인을 좋아할 부인은 없을 것 같다. 비싼 점심을 사준 호의를 생각해서 맥주값을 계산하고 서둘러 터미널로 왔다.
케프에서는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것 같다. 이유는 없다. 케프니까.

 

 

 튀니지의 술

 
튀니지는 공식적으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술을 마시는 사람이 크게 늘어서 사회문제가 된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음주단속이 없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존재한다고 한다. 음주단속을 공식화하면 술을 마신다는걸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술을 파는 곳은 정해져 있는데 튀니스에서 가장 큰 대형마트인 까르푸나 제앙 그리고 일부 대형 모노프리에서 팔고 각 도시의 몇몇 곳에서 판매를 한다. 대형마트에서도 술을 파는 시간은 저녁 여덟시까지로 정해져 있고 금요일이나 라마단기간에는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 또한 술을 파는 코너 앞에는 무장한 경비원이 지키고 있어서 현지인들은 술을 쉽게 사지 못한다. 하지만 지방에서 술을 파는 마트에는 그런 제약이 거의 없고 술을 파는 곳은 전당포를 연상시키는 철창에 둘러싸인 좁은 창구에서 파는데 언제나 사람들이 많은편이다.
대부분 술을 마시는 곳은 닫힌 공간에서 숨듯이 있지만 외국인들이 이용하는 호텔이나 관광지의 식당에서는 예외다.(케프도 예외다.) 술을 마시고자 하면 얼마든지 마실수 있다.


대표적인 술은 와인이고 맥주는 자국브랜드인 셀시아 한 종류가 있다. 술을 파는 매점에서 파는 술의 종류는 단순한데 맥주는 셀시아와 하이네켄, 벡스, 뢰벤브로이 등이 다고 와인은 모두 튀니지산으로 튀니스스 아래 모나그(Mornag)에서 생산된 와인 몇 종류다. 대형마트에서는 외산 와인과 위스키등을 팔고 있지만 역시 다양하지는 않다.

가격은 250ml짜리 셀시아 맥주캔이 1디나르(천원) 내외 하이네켄 330ml가 1.4디나르 정도며, 와인은 마공(Magon) 레드와인이 4.5디나르 정도, 약간 고급인 비외(Vieux)마공 7.5 디나르 정도로 품질대비 저렴하다고 한다.


튀니지에서 가장 발달한 것은 무알콜 음료다. 

여러종류의 무알콜 음료들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대외적으로 술을 안마신다는 상징으로 무알콜 음료의 종류가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