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세린에서 하룻밤을 자고 헤이드라(Haïdra) 유적지로 방향을 잡았다. 유명한 관광지나 큰 도시가 없는 곳이어서 남쪽을 제외하곤 튀니지에서 가장 오지에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차라리 좋은 기회인것 같다. 튀니스에서 출발하는 텔라행 첫차를 이용하면 당일에 다녀올 수 있지만 텔라에서 돌아가는 차는 새벽차말고는 오후 한시 반에 떠나기 때문에 루아지를 이용해야 한다. 대중교통으로는 튀니스에서 하루만에 다녀오기는 까다로운 곳이다.
아침을 호텔에서 주는 빵과 우유로 간단하게 해결한 후 루아지 터미널을 찾았다. 캐세린 시가지는 서쪽의 군사도시답게 시가지에는 부서진 성벽도 곳곳에 보이고 대포도 몇 개나 볼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롬멜을 유명하게 만든 캐세린패스(Kasserine Pass)의 전투가 바로 이곳에서 있었다. 세계대전 중반 북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미국과 독일의 최초 전차전으로 이곳에서 미국의 기갑사단은 독일의 전차중대에게 궤멸당했다.
버스터미널 한쪽에 서있는 루아지들중에 텔라로 가는 차가 있었지만 사람이 몇 명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버스터미널안을 들어가 보았더니 관광지와는 먼곳이어서 그런지 아랍어로만 표시되어있다.
한참을 기다려 출발한 루아지가 시가지를 벗어나자 마자 멋진 풍경의 연속이다. 솀비를 올라갈때는 멀리 돌아갔지만 캐세린의 시가에서는 정상에 있는 군부대가 빤히 보인다. 솀비와 케세린의 북쪽에 거칠게 서있는 산 사이의 고겟길을 넘어가는데 이곳이 캐서린패스다. 좁고 긴 길을 지나면 조금씩 높아지는 평원을 끝없이 직진으로 달려 텔라가 나온다. 캐세린에서 50km 거리다.
텔라
텔라는 1000m의 고지에 있는 공업도시로 시가지 한복판에 프랑스 식민지때의 프랑스인 숙소가 남아있다. 주변에 채석장이 많고 공장의 매연이 항상 심하게 나는 곳으로 겨울에는 눈도 많이 내린다고 한다. 케세린에서 출발한 평평한 길을 계속 달리다가 약간 높아지고 산위에 저수지가 나타나고 내리막부터 텔라 시가지가 시작되는데 내리막을 한참 내려가서 로마시대의 신전터 주변이 루아지 정류장이다.
마을 한 복판에 있는 신전터가 신기해서 들어가서 사진을 찍으니 남자들이 사진을 찍지말라면서 제지한다. 이곳이 보호구역이라고 뭐라고 하는데 시내 한복판에 있는데 말이 안되는 소리긴 하지만 얼른 사진기는 집어넣고 구경을 계속한다.
헤이드라로 가는 루아지를 물으니 다떨어진 승용차에 노란줄을 그어서 루아지로 이용하고 있다. 루아지를 안내해준 사람도 헤이드라로 가는 30대였는데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트럭운전을 하다가 1년전 튀니스로 돌아와 트럭운전을 했고 지금은 트럭사고로 직장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커다란 트럭에 골재를 가득싣고 시간을 맞추려고 과속하다가 트럭이 넘어졌는데 튀니지의 미끄러운 도로가 문제였다. 천천히 달려서는 직장을 유지할 수 없고 빨리 달리자니 모래와 비에 미끄러운 도로에 목숨까지 맡겨야 한다. 몇 개월 동안했던 다리의 깁스를 풀고 많이 다치지 않은것과 돌아갈 고향이 있음을 감사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어떤 위로나 동정도 필요없었다. 그는 알라를 믿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신에게 바라기는 해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는것이 이 나라 사람들이다. 최선을 다하지만 안될수도 있다는 '인샬라' 가 약속을 안지키고 거짓말을 하는 아랍사람들을 조롱거리로 놀리려는 사람들에게 자주 인용되곤 하지만 험한 자연환경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종교가 주는 여유와 허용이 바로 '신의 뜻'이다.
좁은 승용차의 뒷자리로 들어가다가 부딪힌 청년에게 상처를 덧나게 하지 않는다는 연고를 발라주자 청년은 나를 형으로 부르겠다며 나가서 주스를 사왔다. 유통기간이 2달이 넘은 주스지만 달게 마시며 텔라의 좁고 가파른 길을 빠져나가 헤이드라로 가는 샛길로 들어선다.
차선도 없고 중간에 바퀴까지 차오르는 물길을 여러번 건너는 지름길인데도 루아지 기사 할아버지는 신나게 속도를 내어 달린다. 꽃이 활짝핀 5월초 봄이어서 산과 들이 모두 아름답고 멀리 주그르타 테이블이 선명하게 보인다. 하늘을 향하 우뚝솟은 뱃머리처럼 앞쪽이 튀어나온 흰바위가 노아의 방주라고해도 될 것같다. 다음에 꼭 테이블에 올라가 보리라 마음먹는다.
헤이드라 유적지
이제 평지가 된 길의 왼편에는 수량이 많은 강이 흐르고 앞에 커다란 개선문이 눈에 들어온다. 길의 곳곳에 유적들이 눈에 들어오고 헤이드라 마을의 입구에서 루아지를 내렸다. 마을 입구의 로터리부터 전지역이 유적지라서 입구도 없고 담도 찻길쪽에만 있는데 그 안쪽에는 당나귀가 풀을 뜯고 있다. 소나기가 막 내린 신전의 회랑을 지나서 빨간지붕이 선명한 집쪽으로 갔더니 튀니지의 전통옷 뽀르누스를 멋지게 입고있는 덩치 큰 사람이와서 말을 건다. 이곳 관리인인데 나의 여권을 보자고 한다. 여권을 확인한 후 관리인은 헤이드라유적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튀니지에서 가장 넓은 유적지이고 알제리 국경과 가까우며 빨간 지붕의 집은 박물관으로 만들어질 예정이고 그렇게 되면 다음해 부터는 입장료를 받을것이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전통옷을 입었지만 군인 같아 보인다. 옷도 보통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뽀르누스가 아니라 아주 고급제품같고 라벨 같은것도 붙어있다.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가 입고 나오는 뽀르누스가 마음에 들어서 하나샀는데 영테가 나질 않았는데 1만원에서 5만원하는 것에서 부터 비싼것은 20만원이 넘는 양털제품도 있다고 하더니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고 싶다.
로마인의 토가가 바로 이런 모습일것이란 생각을 할만큼 멋진 풍채와 옷을 입은 관리인은 내가 이곳을 떠날때 까지 계속 주시하는듯 했다.
그때 길가에 담벼락만 남아있는곳에 있던 차가 출발하는데 고개를 내밀어 손을 흔드는 사람을 보니 어제 솀비정상근처에서 만났던 외국인 부부다. 어제 캐세린에서 자고 벌써 헤이드라 구경을 다하고 떠나는 길이었다.
무수한 유적들이 널부러져 있는 곳을 지나 북쪽 야트막한 곳을 올라서니 철길이 나온다. 캐세린에서 알제리로 연결된 화물열차들이 운행하는 철로인데 레일위에 녹이 슬지 않은걸보니 열차가 자주 다니는 모양이다. 나무가 부족한 나라여서 그런지 레일 밑에는 나무대신 철로된 구조물을 받쳐놓았다.
이제 개선문쪽으로 가본다. 중간에 원형극장터가 있는데 철저하게 파괴되어 바닥만 남아있다. 주변의 돌들을 잘 맞추면 괜찮은 모양이 나올듯한데 규모도 작고 적당한 크기의 돌들은 마을사람들이 가져갔을 것 같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가져갔을것 이다.
너무 흔한 유적의 돌과 유물들이 사막에서 거의 2천년을 지냈으니 이나마 남아있는게 신기할 정도지만 너무 흔하기 때문에 이정도라도 남아있을수 있는것 같다. 튀니지의 식당이나 호텔, 심지어 괜찮게 사는 집에서 유물이 분명한 돌들을 많이 봤는데 이렇게 버려진 돌무더기는 너무 무겁거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라틴어가 씌여진 돌이나 정교한 조각이 있는 부조, 모자이크들을 자꾸 볼수록 로마인의 기술과 문명에 대한 감탄이 나오고 복받은 나라란 생각이 든다.
개선문의 윗부분이 떨어져 버려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다가갈수록 규모가 크고 특히 두께가 다른곳보다 더 두툼한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조각난 다른곳의 기둥들과 달리 하나의 돌로된 커다란 기둥들이 복잡한 구조의 문을 지탱하고 있는데 비슷한 스베이틀라의 개선문보다 규모가 커서 기둥이 앞뒤로 두개씩 쌍을 이루고 있다. 양식이 독특해서 찾아보니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개선문이다. 리비아의 렙티스 마그나출신으로 아프리카출신으로 최초의 로마황제가 된 기념으로 개선문을 만든것이다.
개선문 주변은 밀밭과 꽃밭으로 파란 하늘과 어울려 좋은 경관을 보여주는데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벌판 저만치 영묘가 우뚝하게 서있다. 빙 둘러서 신전터를 보고 유적지와 밀밭의 경계가되는 길을 따라 강으로 먼저 갔다. 수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큰 물소리를 내며 흙탕물이 산허리를 위태롭게 깎으며 내려가고 있다.
영묘는 누미디안의 것과는 달리 윗부분이 둥글지도 않고 로마의 신전모양으로 세모꼴에 세밀한 장식을 하고 있었다. 구멍뚫린곳으로 들어가보니 텅빈 공간에 새들만 드나들고 있었고 천장부분은 하늘이 보이게 열려있었다. 뒤에서보니 윗부분도 훼손된것 같다. 누미디아인들은 언덕위에 도시를 건설하기 때문에 이곳은 원래 누미디아의 도시가 있던 곳이 아니라 로마인들이 건설한 곳이고 그래서 로마속한 누미디아인의 풍습에 따라 건설한 영묘도 로마식으로 지은것이라 추측해본다. 훨씬 아래쪽이지만 캐세린의 실리움 앞에 있는 영묘가 누미디아식인것과 구분된다. 실리움의 자리는 솀비의 강물이 내려온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이제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마을쪽으로 간다. 수량이 풍부한 강변에 위치한 곳이라서 강을 따라서 성벽을 세우고 도시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강물이 유적을 집어삼키고 있다. 아까운 유물들이 지금도 계속 강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데 달리 막을 방법이 없는것 같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강의 기세가 워낙 세서 유적쪽은 이미 가파른 절벽이 되어있었다. 예전부터 이곳은 중요한 요충지였는지 강변을 따라 지어진 요새는 망루가 설치되어있고 엄청나게 큰 돌로 성벽을 만들었다. 정교하게 다듬은 커다란 돌덩이들이 아치를 이룬 벽이 견고했던 성채를 말해주고 있는듯하다.
주변에는 커다란 육면체의 돌들이 많이 흩어져 있고 강쪽으로는 로마의 가도에 쓰였던 것을 모아 일렬로 쌓아놓았다. 이제 유적을 정비하려고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마침 유적사이에서 양을 치는 할아버지를 관리인이 큰소리로 쫒아내고 양치기 할아버지도 뭐라며 말대꾸를 하는데 아마 관리인은 유적내에 양을 들여오면 안된다는 것이고 할아버지는 원래 이곳에서 오랫동안 양을치던 곳인데 왜 그러냐는 것이리라. 관리인이 다가와서 할아버지의 등을 험하게 밀고 나서야 할아버지는 양을 데리고 마을쪽으로 사라졌다. 튀니지 최고의 유적지 두가안에도 아직 양을 방목하고 농가가 있는데 이곳이야 말해 뭣하랴. 하지만 자기일에 자부심을 가진 듬직한 관리인이 사람들에게서 유적이 더 이상 망가지는 것을 막을 것이다. 자연에 의해 무너져 가는 유적을 막을수는 없겠지만...
유적을 보고 나니 두시쯤 되었다. 점심시간이 좀 넘었고 아침도 호텔에서 준 바게트와 우유밖에 안먹어서 헤이드라 시가에서 밥을 먹어야 할것 같았다. 루아지에서 같이 이야기했던 사람에게 전화해서 집을 찾아가도 되겠지만 돌아갈 길이 멀기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작은 시가의 한쪽에 루아지가 서있는데 사람들이 꽤 있고 루아지도 10인승 대형이다. 벌써 8명이 모였기 때문에 기사가 1명만 더 기다리면 된다고 좋아한다. 1명을 기다릴 동안 밥좀 먹겠다고 하자 기사가 근처의 식당을 안내해준다. 저렴하지만 깔끔하고 맛이 좋은 식당에서 샐러드와 음료수로 식사를 하는데 바로 기사가 오더니 출발해야 한다고 한다. 음식이 나온지 1분도 안됬는데 너무한다.
서둘러 음식을 대충 먹고 나가려고 하니 주인이 제지하면서 루아지 기사에게 뭐라고 한다. 밥먹을 시간을 주라고 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천천히 먹으라고 하는데 갑자기 너무 고마워진다. 튀니지 사람들은 정이 많다. 특히 손님에게는 더 정이 많고 말을 안해도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험한곳에 사는 사람들인데 사람들간에도 험하면 정말 못살곳이 되는것이다.
루아지는 조금 돌았지만 큰길로 텔라로 올라갔다. 멀어지는 개선문과 주그르타 테이블을 보면서 아무곳에나 버려진듯 사방 놓여있는 유적들과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과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흐르는 강물이 유적을 흙탕물속으로 집어 삼키는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
'로마유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수도교와 물의신전 (0) | 2010.12.23 |
---|---|
[두가]튀니지 대표 로마유적[사진] (0) | 2010.12.22 |
[로마유적]투불보 마주스 (0) | 2010.12.16 |
[갑사]로마시대의 수영장 (0) | 2010.12.11 |
[로마유적]마크따르와불라레지아 (0) | 2010.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