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유적]투불보 마주스
튀니스 남서쪽의 엘파(El-Fahs)에 있는 투불보 마주스(Thuburbo Majus)는 튀니지에서도 가장 많은 주거지가 남아있는 유적으로 유명하다. 카르타고에서 남부 사막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야트막한 구릉에 있는 유적지로 주변은 한적하고 풍요로운 농촌이다.
남부로 가는 밥알리와 터미널에서 엘파까지 간다고 표를 사려고 하니 잘 못알아듣는 눈치다. 표를 사려는 다른 사람이 아랍어로 창구직원에게 이야기 하니 표를 내준다. 나를 도와준 아저씨는 엘파가 아니고 파하스라고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왜 관사를 붙이고 또 Fahas가 아닌지는 의문이다. 케프도 Le-Kef나 El-Kef로 표기하는걸 보면 관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가 보다. 단어나 약자랑 헷갈려서 관사를 붙이는것 같기는 하다.
사람이 많아서 버스를 몇 대 보내고 겨우 캐세린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가까운 곳이어서 파하스를 지나는 버스가 많지만 신트리버스 보다는 자주있는 까이로완 지역시외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더 많았는데 사전에 그런 사실을 알기는 쉽지 않을것이다.
버스의 제일 뒷자석에 앉았는데 옆자리에 앉은 청년은 케세린으로 간다고 한다. 솀비에 갔던 일을 이야기하며 가는데 금방 파하스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린 곳은 파하스의 입구 쪽 정류장이고 루아지 정류장은 마을의 반대 쪽 끝까지 가야 한다고 한다. 투불보 마주스 유적지가 튀니스 쪽 정류장에서 가깝긴 하지만 택시를 타지 않는한 루아지 정류장에서 꽉차서 오는 차를 탈 방법이 없다.
마침 중년의 군인이 지나가기에 길을 물었더니 달리던 트럭을 세워서 그 쪽 방면으로 가는지 물었지만 가지 않는다고 한다. 군인은 시골마을에 사람도 별로 안사는 곳이어서 택시나 루아지를 타야 한다. 루아지 터미널은 길을 따라 1킬로쯤 가야 한다고 한다.
작은 마을이어서 택시도 잘 안다니고 오가는 택시는 합승택시로 사람이 꽉찼다. 30여분을 기다리고 묻고 시간을 보냈으니 처음부터 걸어가는 것이 나았다. 시가지를 가로질러 20여분을 걸어 도착한 루아지 터미널에서 루아지를 타고 투불보 마주스로 향했다.
루아지 기사와 주민들 모두 동양인은 처음보는듯 아주 신기해 한다. 계속 이야기 하고 물어보던 루아지 기사가 나를 내려줄 곳을 지나쳤다고 한다. 녹색이 싱그러운 들판을 가로질러 외딴집에 장보러 왔던 아주머니를 내려주고 길에서 유턴을 해서 나를 유적지 앞에 내려주었다.
유적지입구는 파하스에서 큰길을 벗어나면 바로 나오기 때문에 튀니스쪽 정류장에서 걸으면 내가 루아지 터미널까지 걸어갔던 시간 정도밖에 안 될 것 같다. 군인아저씨가 애매하게 말했던게 이해간다.
유적지를 알리는 화살표를 따라 가로수가 크게 자라서 서울주변의 왕릉을 가는듯한 길을 걸어 한적한 길로 들어서니 유적지 입구가 나온다. 유적지 입구만 멀리 있을 뿐 가로수길 옆이 유적지의 담과 같다.
유적을 구경하러 온 사람이 간간이 보인다. 입구부터 야트막한 구릉에 유적이 빽빽하게 있고 유적을 정비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불라레지아처럼 이곳도 모자이크가 흔하고 유물들이 흔하다.
투불보 마주스를 상징하는 신전의 기둥들을 찍고 공중목욕탕을 보고 약간 떨어진 언덕쪽을 향했다. 카엘레스티스 신전의 문을 지나면서는 노란 꽃이 활짝피어 경치가 너무 좋다. 남쪽의 헤이드라에서도 꽃이 많이 피었었지만 이곳 만큼 화사하고 밀집되어있지는 않다.
사람들이 다니도록 좁은 길만 나있는 곳을 올라가니 마을을 지키던 성채와 망루였던 곳인가보다. 망루 바로 아래쪽은 부서진 개선문이다. 규모가 작지 않은 걸로 봐서 이곳도 상당히 번성했던 곳 같다.
해변을 따라 번성했던 튀니지 지역이지만 이곳 투불보 마주스를 지나서 스베이틀라 캐세린으로 연결되는 길은 사막의 관문인 토저로 가는 대상로로 중요한 길이다. 현재도 튀니스에서 50킬로미터 거리로 가깝고 까이로완과 실리아나로 갈라지는 중요한 교통요지다.
또 어떤 시설이 있는것으로 보이는 반대편 언덕으로 향한다. 꽃들 사이로 길은 없지만 유물일지도 모르는 돌덩어리들을 징검다리 삼아서 갔다. 언덕으로 보인곳은 부서진 원형경기장이다. 규모가 작기도 하지만 입구말고는 흙으로 덮여서 많이 훼손되었다. 입구의 돌은 글자도 거꾸로 되어있다. 일부러 거꾸로 놓은것은 아닐텐데 이런 튀니지에서 이런걸 많이 본다.
원형경기장 너머는 파하스 시가가 바로 밑에 동네처럼 보인다. 유적안에 농가도 있고 담도 없어서 유적과 바깥의 구분이 없다. 가로수길 쪽의 풀밭 가운데 영묘로 보이는 잔해가 있어서 걸어가 본다. 가까이에서 보니 영묘가 아니라 문의 일부였다. 이곳은 누미디안이 살던 곳이 아니니 영묘가 있을리 없다. 근처에는 당나귀가 풀을 뜯고 있고 풀숲 사이에는 모자이크들이 사방에 방치되어있다.
돌아가는 길은 편했다. 가로수길을 걸어서 유적지 입구표지의 길에서 걸어가려고 할때 마침 루아지가 한대 지나간다. 나를 태워주었던 기사다. 한 루아지가 계속 왕복하는가 보다.
튀니스에서 가까운 유명한 유적지는 이곳 투불보 마주스와 더 가까운 우드나 그리고 북쪽의 우티카가 있는데 이곳 밖에 못가봤다. 우드나는 커다란 원형경기장이 있고 주변에 수도교가 있지만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힘들것 같다. 모하메디아에서 택시를 이용해서 방문 한다면 괜찬을 것 같은데 조금 아쉽다.
또 우티카는 카르타고 제2의 도시로 유적지 규모도 큰데 카르타고에 가려서 많이 찾지 않는것 같다.
튀니지의 유적지는 카르타고와 두가 엘젬만 봐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지만 유적지마다 조금씩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유적지를 봐도 식상하지 않다. 규모나 보존상태로 보면 리비아의 렙티스마그나나 사브라타, 알제리의 팀가드만 못하겠지만 로마 다음으로 번성했던 도시 카르타고와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원형경기장 엘젬이 있는 튀니지의 유적들은 흔한것 이상으로 가치가 있어보인다.